[다산 칼럼] '싱가포르식 혁신전략' 안 보이나

입력 2019-06-03 17:29  

버팀목인 수출에도 빨간불 켜진 한국 경제
싱가포르처럼 기업활동 막는 규제 없애고
부가가치 높은 서비스산업 경제로 나가야

권태신 <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



“한국과 싱가포르는 비슷한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싱가포르의 혁신 경험이 한국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겁니다.” 지난달 초청 대담에서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가 한 말이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닮은 점이 많다. 1965년 독립한 싱가포르는 허허벌판에서 시작한 빈국이었다. 기업이나 자원이 없고, 내수시장도 작고, 노동력도 부족하고, 주변국인 말레이시아의 견제도 많이 받았다. 싱가포르를 보면 한국의 상황이 훨씬 나아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훌륭한 리더와 올바른 정책을 바탕으로 지난 50년간 연평균 5%가 넘는 고성장을 이어왔다. 한국과 더불어 기적의 경제성장을 이룬 모범국가가 됐다.

안타깝게도 요즘 양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듯하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싱가포르 1인당 국민소득은 1000달러로 우리와 비슷했다. 그랬던 싱가포르가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6만달러를 돌파했다. 이제 겨우 3만달러를 넘어선 한국과 격차를 2.3배까지 벌렸다. 2%대 성장도 버거운 한국 경제를 볼 때 앞으로 격차가 줄어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결국 기업 투자의 차이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우리보다 다섯 배 많은 620억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했다. 경제 규모가 한국의 5분의 1, 인구는 10분의 1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이 작은 나라에 세계의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끼며 돈을 싸들고 오니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비결을 물으니, 고촉통 전 총리는 ‘과감한 산업구조 혁신’을 들었다. 싱가포르는 2000년대 초 중계무역 중심 성장의 한계를 절감하고 금융, 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경제로 전환했다. 실제 싱가포르의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비중은 53.7%로, 한국의 22.8%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관광산업도 급성장했다. 청렴한 도덕국가 이미지를 고집하지 않는 과감한 결단으로 마리나베이, 센토사에 카지노를 포함한 대형 복합리조트를 건설했다. 이를 통해 일자리 3만여 개를 창출하고 인구의 세 배가 넘는 185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했다. 역대 정부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겠다고 공언하지만, 막상 서비스산업발전법은 국회에서 8년간 잠자고 있는 한국과 딴판이다.

고촉통 전 총리가 또 하나 꼽은 것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다. 싱가포르는 기업활동을 막는 규제가 거의 없다. 대표적으로 영리의료법인, 영리교육기관이 다 허용된다. 그 덕분에 존스홉킨스병원, 듀크대 의료센터 등 해외 유명 의료기관을 유치하며 의료산업을 발전시켰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조지아공대 등 유명 대학을 유치해 세계적인 교육 허브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규제장벽 탓에 원격의료도 못하고, 겨우 하나 있던 제주도 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은 영업도 못 해보고 설립 취소됐으며, 영리학교는 꿈도 못 꾸고 있다. 싱가포르 의료관광객의 약 6분의 1밖에 유치하지 못하고, 매년 24만 명이 교육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한국으로선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싱가포르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고, 조세 부담은 낮다. 2018년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노사협력 2위, 정리해고 비용 5위를 기록했다. 각각 124위, 114위를 기록한 한국과 큰 격차다. 1인당 노동생산성도 지난 8년간 싱가포르가 71.7% 증가한 반면 한국은 24.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조세 부담도 차이가 크다. 싱가포르는 법인세율이 최고 17%, 소득세율은 최고 22%로, 한국의 25%와 42%에 비해 낮다. 상속세도 없다. 이렇게 조세 부담이 낮으니 기업인들이 탈세의 유혹 없이 기업활동에 매진하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싱가포르로 몰려드는 이유다.

우리도 싱가포르의 혁신 주도 성공 전략을 배워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삐걱대고 있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실업자는 늘어나고, 설비 투자는 감소하고 있다. 버팀목인 수출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더 이상 손을 안 쓰면 내리막길뿐이다. 다행히 우리는 싱가포르보다 인구도 많고, 영토도 넓으며, 제조업 기반도 훨씬 탄탄하다. 싱가포르 수준의 혁신만 추진해도 세계 투자자들은 한국으로 몰려들 것이다. 싱가포르식 혁신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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